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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여행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박정희에서 노무현으로의 이어진 국가 프로젝트

by Andrew Russel 2023. 7. 1.

서울에서 세종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한 것은 대한민국의 권력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기념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박정희 정부에서 구체화되었고 최종적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합의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세심한 계획, 광범위한 토론 합의라는 정치적 대화가 수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행정 수도를 세종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직면한 주요 문제와 도전 과제를 알아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비전과 초안

행정수도 이전 구상은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한 박정희 정부 때 시작되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 안보의 문제를 고려하여 행정수도 건설을 계획하였습니다. 끝없는 인구 유입으로 과밀화 되어가는 서울은 북한과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경우 많은 인명피해가 생길것이 자명하였습니다. 또한 서울에 수많은 정부 각계 부처가 밀집되어있는 만큼 북한의 포 사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정수도 건설을 계획하였습니다. 북한의 지상포 사정권은 70KM, 해상포 사정거리인 40KM를 벗어난 곳을 후보지로 선정하였는데 그리하여 1차적으로 선정되 곳이 천원,진천, 중원, 공주, 대평, 부용, 보은, 논산, 옥천, 금산이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는 중단되게 됩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합의와 세종의 발전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중단된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에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2003년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이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와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지를, 이명박 서울시장은 반대를 표명하였습니다. 오랜기간동안 정치적 대화와 합의를 통하여 2010년 12월 27일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공포되었고 행정수도의 명칭은 세종특별 자치시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충남 연기군과 그 양옆의 공주, 천안시의 땅 일부가 편입되어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게 됩니다.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후 세종시를 새로운 행정 수도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각계 부처의 건물, 인프라 및 주거 지역 건설은 약 500,000명의 주민을 수용하고 활기차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구축한다는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

 

재배치 과정의 어려움

행정수도를 세종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합의가 필요했습니다.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수도로서의 지위와 영향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서울의 반발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서울을 국가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로 유지하고 세종을 행정 중심지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세종으로 이전할 정부 기관과 직원을 유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도권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공무원들의 이주를 장려하기 위해 정부는 시설 개선, 주택 지원, 교통 인프라 개선 등 다양한 인센티브와 혜택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이전 기간 동안 행정 기능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종으로의 행정수도 이전은 수십 년에 걸친 복잡하고 긴 과정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때 처음 구상되어 노무현 정부 때 실현된 이 계획은 권력 분권화, 지역 균형 발전 촉진, 새로운 행정 허브 구축을 목표로 했습니다. 행정수도의 이전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이해당사자들간의 합의가 필요했지만 성공적인 완성은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세종이 행정 수도로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함에 따라 행정수도의 건설이 대한민국의 지역 균형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입니다.